#3. Key
  
#3. Key





녀석이 기적처럼 나를 찾아 온 것도, 벌써 일주일 전의 일이 되었다.
아로의 말처럼 집을 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루를 신세진다고 했지만, 그게 이틀이 되고, 삼일이 되고, 결국에는 5일 동안 우리 집에 머물렀다. 나야 전혀 개의치 않았지만, 아로는 하루가 지날 때마다 미안하다고 사과 하고 또 사과했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미안해서 미칠 것 같은 것은 내 쪽이니까. 네가 아니다.



5일째 되던 날, 볼일이 있어 시내에 갔다 해가 저물기 전에 집에 들어오니 아로는 없었다. 식탁위에는 집을 구했다며, 집주소와 그동안 고마웠다는 짧은 메모가 적힌 종이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그러고 보니 거실 구석에 항상 놓여 져 있던 아로의 짐이 없었다. ……아니, <짐>이 아니다. 짐이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작은 가방 하나. 이곳에서 집을 구해, 모든 걸 새로 시작 한다고 하던 녀석이 가져 온 것은 겨우 그 작은 가방 하나였다. 아로가 나를 찾아 온 그 날, 내게 했던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온 것이다. 후회도, 미련도 없어 보이는 담담한 표정에 내가 할 수 있는 말 같은 건 없었다. 돌아가라는 말 따위…… 감히 입 밖에 낼 수조차 없는 것이다.



나는─  아니, 내가…… 망쳐놓았다.
녀석의 가장 소중하고 꿈같을 학창시절을…… 산산조각 내 버린 것은 나이다. 학창시절뿐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음악 공부를 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녀석이, 졸업을 하자마자 나를 찾으러 떠나 온 것이다. 혼자……. 5개월 간 혼자, 그 누구의 도움없이, 나를 찾으러 다닌 것이다.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버리고, 떠나리라 결심하기까지의 녀석의 마음을 나는… 알지 못한다. 이해하고 싶어도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는다. <좋아 한다>는 마음 하나로, 그게 가능한가?! 이해하려고 애써 봐도, 그저 가슴만 먹먹해져갈 뿐이었다. 나를 찾아온 날 하염없이 흐느껴 울던 그 얼굴만 떠오를 뿐이었다. ……생각하기 싫어진다. 이해는커녕 또다시 이렇게 가슴 속 어딘가에 묻어서 감추어버리고 싶어진다. 하지만 쫓아 내려 할수록 눈물로 얼룩졌던 호수색 눈동자가 점점 더 선명하게 각인될 뿐이다.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 백 번, 아니 천 번으로도 나는 용서받지 못한다. 이미 상처받고, 상처 받아 새까맣게 타버린 그 가슴속 흔적을 지워주지 못한다. 아마… 평생이 가도 지워지지 않겠지.





아로가 구한 집은 우리 집에서 아주 가까운 곳은 아니었다. 종이에 적힌 주소를 따라가 찾은 집은, 우리 집에서 10분 정도를 걸어야 도착하는 위치에 있었다. 5층으로 된 건물은 척 봐도 지은 지 오래된 맨션이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내게 그런 얘기를 했었다. 이왕이면 높은 층의 방을 구하고 싶다며 창문에서 바다가 바로 보이면 좋겠다고 했다. 종이에 적힌 주소를 처음 보고는 조금, 웃음이 나왔다. 무려 5층의 방을 구한건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 계단을 올라갔다. 척 봐도 낡은 건물에 무슨 기대감 같은 걸 가진 것은 아니지만, 원래의 색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벗겨지고 바랜 벽의 페인트 자국, 움푹 패인 나무 바닥… 건물 안은 바깥보다 더 볼품없이 낡아있었다. 나무로 된 계단을 올라갈 때마다 삐걱삐걱 나무 소리가 크게 울렸다. 5층에 다다라서, 종이에 적혀있는 대로 <왼쪽 복도 끝 방>을 찾았다. 왼쪽 복도 끝에 다다라 짙은 갈색의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노크를 하려고 손을 올리던 순간, 문 틈새가 조금 열려있는 게 보였다. 조심히 문을 열자 바로 아로가 보였다. 아니, 정확히는 녀석의 뒷모습. 그보다 더 정확히는 녀석의……… 커다란 등이다.








내가 들어 온 것도 모르고 멍하니 계속 서서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똑똑─.
이미 열려진 문에 노크를 했다. 문을 두드리던 내 손에, 어쩐지 조금 힘이 들어가 있음을 스스로 눈치채지 못했다. 노크를 하자 그제 서야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았다.




“아, 엔리케?!”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어?”
아로는 당황한 듯, 침대에 올려 둔 셔츠를 들어 입었다. 급하게 셔츠 단추를 잠그며 변명한다.
“더워서… 나 아직 여름 옷을 사지 못해서…….”
“아아, 괜찮아! 덥잖아? 나는 상관 하지 않아도 돼.”
“응? 아, 아니, 그게….”
“뭐 어때, 남자잖아?”
웃으며 말하는 나를 멍하니 잠시 바라보더니 손으로 입 언저리를 만지며 작게 웃었다.
“……음, 그래, 그렇지.”
어쩐지 자조적인 미소였다.
잠깐, 그러고보니 지난 며칠간  늘 긴 셔츠 소매를 짧게 접어 입고 있던 아로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렇게 더운데… 여름 옷이 단 한벌도 없었단 말인가? 이제서야 그걸 눈치 챈 둔감한 내 자신이 더 없이 원망스러워졌다.

“그러고보니, 여름이네. …떠나올 때에는 이른 봄이었어. 조금 춥기까지 했는데, 벌써 여름이 되 버렸어. 나는… 엔리케를 찾는데 계절이 바뀔 정도의 시간이 걸릴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어. 짐을 쌀 때에는 당장에 입을 옷만 가져가자고 생각했지. 그래서 여름 옷 같은 거, 생각도 안 한거야. 웃기지…?”

커다란 손으로 성큼성큼, 셔츠의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다. 조금은 검게 그을린 길다란 팔… 누가봐도 어른 남자의 팔이다. 5년 전, 긴 소매셔츠 끝으로 작은 손가락이 보일 듯 말 듯 하던 그 귀여웠던 소년은 이제 없다. 알면서도 이렇게 불쑥, 그때의 잔상들이 떠올라 버리고 만다. 나는, 그런 아로가 무척 귀여웠다. 내가 손을 만지면 깜짝 놀란 얼굴로 뿌리치곤 했다. 수줍음이 많은 녀석이라, 그런 모습마저도 귀엽다고 생각했다. ……나를 좋아하고 있는 것도 모르고.



“…그래. 벌써 8월이야.”
“응.”
“음, 오늘은 좀 늦었으니까, 내일 옷사러 갈까? 아로한테 시내 구경도 시켜주고 싶고… 아로 차 타는 거 좋아하니까, 내일 드라이브 갈까…? 내일 12시쯤 다시 찾아 와도 돼?”
말을 잇는 사이에  어린 아이처럼 들떠버린 내 자신이 조금 우스웠다. 그런 나를 보며 또 대답 없이 웃기만 하고 있다. 긍정도 부정도 없다. 지난 5일간, 함께 집에 머무르면서도 종종 그랬다. 어색한 침묵이 길어지려 할때마다 자주 예전의 이야기들을 꺼냈다. 녀석의 어렸을 때의 이야기들을 말이다. 기억이 나냐고 물을 때마다 지금처럼 그저 작게 웃기만 했다. 그럴 때면 조금은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나… 사실 깜짝 놀랐어.”
조심히 말을 걸었다.
“응? 뭐가?”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뒷모습을 보면 아로 인 줄 전혀 몰라보겠어. 멋진 남자가 되었다는 건 알았지만, 방금 새삼 놀랐어. 뭐야, 그 등…… 굉장히 멋지잖아.”

칭찬이 무색해지리만큼, 곧바로 내 얘기는 건너뛰었다.
“엔리케는.”
“응?”
“전혀 변하지 않았어. 똑같아.”
……내 얘기를 하는 주제에, 나를 봐주지는 않는다. 갑자기 어린 아이처럼, 조금은 심술이 나서 가까이 다가서며  말했다.
“그래? 하하, 설마. 아냐, 자세히 봐. 나 이렇게 주름도 생기고─”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녀석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한 발자국 뒷걸음질 쳤다.
“뭐야, 그거… 자세히 볼 수 있을 리 없잖아.”

이상하다.
혼자 속으로 삼키는 듯한 그 말이, 신기하리만큼 정확하게 귓가에 울려와 박혔다.


“저기, 아로… 이렇게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해.”
“아니야, 괜찮아. 혹시나 해서 주소를 남기고 왔지만 설마 오늘 이렇게 찾아 와 줄줄은 몰랐어. …고마워.”

조그맣게 미소 지었다. 묘하게 온화한 그 미소를 나도 모르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본 적이 없는 미소다. 어렸을 때의 녀석에게선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던 생소한 표정이다. 내가 말없이 계속 바라보자 아로는 당황한 듯 눈을 내려깔고 발밑으로 시선을 이리저리 굴렸다.


“아아, 아로에게 전해 줄 것이 있어서 왔어. 실은… 오늘 이거 찾으러 시내에 나갔던 거였는데, 집에 오니 아로는 벌써 집을 구해 나가고 없고 말이지…….”
고개를 들어 눈을 동그랗게 뜬다.

“줄 거… 라니? 내게?”
“그래.”

바지 주머니 속, 복사 해 온 집 열쇠를 꺼내어 아로의 오른손에 쥐어 주었다

“열쇠야. 우리 집 열쇠.”
“……………. ”

아로는 대답 없이 손에 덩그러니 쥐여진 열쇠를 계속 바라보았다.

“언제든지 놀러와. 내가 집에 있든 없든. 아로 너도 알겠지만 나, 집을 비울 때가 많아. 내가 없어도 집에 놀러 와서 책을 봐도 되고, 자고 가도 되고. 아로 집처럼 편하게 생각해도 좋으니까.”

당황스러웠다. 말없이 손에 쥐어진 열쇠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녀석의 눈에 서서히 눈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까 당황하는 사이에, 말없이 차오르던 눈물은 금세 흘러 넘쳐 뺨을 타고 내렸다.

“아아, 이런…. 이제 울지 않기로 나와 약속했잖아, 아로…. 난 아로가 좋아할 줄 알았는데…… 이런, 어떡하지…… 나, 또 울려버렸네.”

“미안.”
왼쪽 손 바닥 끝으로 눈물을 꾸욱 눌러 닦으며 이어 말했다.
“솔직히 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이건… 달라도 너무 달라서.”
“…뭐가?”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해왔던 모습이랑. 엔리케를 찾는 동안 아주 많은 것들을 생각했었어. 당연히 돌아가라고 할 줄 알았는데, 엔리케는 내게 단 한번도 돌아가라는 말 하지 않았고.”


……그야… 할 수 있을 리 없잖아? 내가 너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 조금이라도…? 비겁하게 또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는 내가 싫어진다. 이런 비겁한 내 속을 알고도, 너는 나를 좋아한다고 할까….



“아니, 무엇보다……. 상대해 줄 거라고 생각도 못했어. 나를 무시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어. 나 때문에 떠난 거니까. 내 얼굴을 보고 싶을 리 없잖아. 그런 나를 잊지 않고 기억이라도 해준다면, 그것만으로 나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었어.”



“…………………….”



……아아, 어째서 너는 그토록 무덤덤하게 내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일말의 기대감 따위 조금도 내비치지 않는 덤덤한 표정과 말투가 오히려 더욱 심장을 죄어온다. 게다가 지금 저 녀석은 무서울 정도로 진심이다. 진심으로…… 5년만에 찾아온 자신을 내가 모른 척 상대해 주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진심으로 그렇게 내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눈물이 날 것 같다. 빨리 무슨 말이라도 꺼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에 다시 말을 이어온다.

“그런데, 이렇게 나를 찾아와주고 열쇠를 주었어. 나는 어떡해야 하지? 솔직히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
라고 말하면서 손을 뒤쪽으로 들어올려 목덜미를 긁적이며 덧붙였다.
“열쇠, 고마워. 정말… 가져도 돼?”
“물론이야. 아로꺼니까.”
“근데, 엔리케."
조금 웃는다.
"이렇게 남에게 집 열쇠를 주면 어떡해? 내가 몰래 엔리케 물건이라도 가져가면 어쩌려고.”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쓴웃음을 짓는다.
“미안, 농담이야.”

“가져가도 돼. 전부 다. 너라면 괜찮아.”

진심으로 한 말이다. 깜짝 놀란 듯이 힐끔 눈을 올려 떠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곧바로 다시 고개를 숙인다.

“뭐야…… 그거… 후회하지 마, 그 말.”

숙인 머리칼 사이로 조금 상기된 뺨이 비친다.

그럴 자격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눈앞에 얼굴을 물들인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녀석이 눈물이 날 만큼 귀여워서,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 주고 싶다. 저 부드러워 보이는 가느다란 갈색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트려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5년 전의 나라면 망설임 없이 손을 뻗었겠지만, 그럴 수 없는 현재의 지금 이 순간이 안타깝다.





“엔리케.”




“응?”
갑자기 이름이 불려져 놀랐다. 속내를 들킨 것 같아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다행스럽게도 그런 나를 보고 있지는 않았다. 아로의 시선이 닿은 곳은 황금색 노을 빛이 조금씩 스며들어 오기 시작한 창문쪽이었다.


“우리 집 창문에서는 바다가 안 보여. 건물들이 다 막아버려서…. 5층이라고 좋아했더니, 이거 뭐야, 전혀 보이지를 않아. 뭐, 이 집이 최선이라 어쩔 수 없이 선택했지만…… 역시 좀 아쉬워.”



“우리 집에 와서 보면 되잖아.”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향해 희미하게 웃었다.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왠지 이전처럼 대답없는 막연한 저 웃음에 서운한 기분은 들지 않는다. 이상하리만치 신기한 미소다. 굉장히 아이 같으면서도, 한없이 어른스러운 부드러운 미소였다. 갑자기 가슴속에 둔한 통증이 느껴져 왔지만 그게 무언지 알 수는 없었다.





“근데, 아로.”
“응.”
“집이… 아로한테 좀… 좁은 것 같은데, 괜찮을까?”
아까부터 줄곧 신경 쓰였다. 5평도 안되어 보이는 이 작고 허름한 방이. 작은 침대와 옷장 하나만으로도 꽉 찰만큼 비좁았다. 커다란 남자 둘이 서 있는 것이 힘겨워 보일 정도로 작았다.


“응? 그런가? 아니, 별로… 잠만 잘 수 있으면 되는데 뭐.”

“아아, 그래.”
보잘것없이 낡고 좁은 집이었지만, 아로는 정작 그런 것 따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이 웃는다. 괜히 머쓱해져서 머리를 긁적이던 나를 보며 갑자기 씨익 웃어 보인다. 손으로 내 쪽을 가리키며 크게 웃었다.


“응. 엔리케가 거기 그렇게 서 있으니까 이상하긴 하네. 혼자 꼭 다른 세계사람 같잖아?! 엔리케 지금 굉-장히 이상해.”


재미있다는 듯 계속 웃는 녀석에게 물었다.

“뭐야, 아로… 왜 그렇게 웃는 거지? 그거 무슨 의미인데 그래?”



갑자기 웃음이 뚝, 하고 멈추어졌다. 방금 전 어린 아이같이 소리 내어 웃던 녀석이 맞나 싶을 정도로 진지한 표정으로 잠시 나를 가만히 바라본다. 눈도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말없이 그렇게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고개 돌려 창가로 걸어가며 조용히 중얼거리듯 내뱉었다.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 소리에 묻혀 버릴 만큼 작은 목소리였지만 분명, 그렇게 말했다.





“……엔리케가 너무 멋있다는 뜻이잖아.”


- Fin -
(BGM - Jim Brickman , Open Doors)



  #4. 그로부터
  #2. 집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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